“코끼리는 채식 동물 중 가장 강해서”라고 대답했었다.
남의 살을 먹지 않고도 엄청나게 힘이 센 코끼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최근에 ‘코끼리는 태어날 때부터 강하게 태어나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태어날 때부터 강한 팔과 다리, 두꺼운 피부, 무거운 몸무게로 태어나는 코끼리였다.
갑자기 코끼리가 띠꺼워졌다.
지는 태어날때부터 밀림의 포식자로 태어나는 주제에 풀만 먹고도 강하다고 나를 속이고 있었어
요새는 우연히 다운 받은 아기 돼지 사진이 너무 귀여워서 돼지 고기를 못 먹겠다.
육식에 대해 고민한지는 꽤 되었다. 고등학교 때 공장형 축산업 때문에 야기된 여러 부정적 결과에 대해 서술한 책을 읽고 무분별한 육식 섭취를 지양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지키지 않았다.
밖을 나가면 온갖 군데가 다 고깃집이다.
삼겹살, 곱창, 특수부위 등등 ‘고기’ 는 너무나 손쉽게 소비할 수 있게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노골적으로 존재한다.
그동안 나도 잠시 양심을 내려놓고 맛있게 먹어댔다. 친구들과 만나면 삼겹살에 소주는 항상 필수 코스였다.
그렇게 살았는데
아기돼지의 사진 때문에
또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다.
아기 돼지.. 너무나 귀엽고 작고 행복해 보이는 이 동물이 아주 짧은 시간을 살고 도축되어 내 입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불편해졌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가서 제일 유명하다는 흑돼지집에 갔는데 숙성을 오랜시간 하는 게 프라이드인 이 식당은 숙성되는 돼지를 유리창 밖에서 볼 수 있게 걸어놨다. 솔직히 고깃덩이의 형상으로만 달려있었으면 아무렇지 않게 또 입안에 돼지를 욱여 넣었을텐데,
돼지 뒷다리가 껍질째, 발까지 달려있는 채로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마침 내 휴대폰 배경 화면은 아기 돼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그 뒷다리를 보는 순간 뒷다리에 붙어있었을 몸통이, 머리가, 살아서 깜박였을 눈이 연상이 됐다.
몇 점 먹은 고기는 불편한 마음 때문에 독이 되어서 그날 밤 배탈이 났다. 제주도 여행 내내 배탈이 났다.
모순이지만 아직 치킨은 먹고 있다.
또 귀여운 병아리 귀여운 송아지 사진을 발견하고 비건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먹는 이 고기가 어떻게 자라났는지, 원래 어떤 동물이었는지, 생명을 바쳐 나에게 양분이 되어주는 동물의 삶이 어떤지
고기가 되어 올라오기 전 살아 숨쉬는 생명이었다는 걸 너무 간과하고 쳐먹어온 나의 삶이 부끄러웠다.
부끄럽다. 아직도 치킨을 맛있게 먹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코끼리가 아니라서 풀만 먹고도 세질 순 없겠지만
그래도 줄여 나가야겠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아닌 내가
고기를 많이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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